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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우스를 기억합니다.
작성자 이름
작성일 2018-12-14 조회수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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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예 준장, 공사30, 공군역사기록단장)

 

19193·1운동을 계기로 무력 없이는 독립 쟁취가 어렵다고 판단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공군력을 이용한 대일전쟁 수행을 위해 중국·미국·러시아 등지에서 한인 전투비행사를 양성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듬해 항공 선각자인 이동휘 국무총리와 군무총장(국방부 장관) 노백린 장군은 일제의 탄압과 감시망이 적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자그마한 도시 윌로우스 시() 일원에 비행학교를 설립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 윌로우스 비행학교로 더 잘 알려진 이 군사학교는 우리나라 항공 독립운동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족적(足跡)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며, 1세기가 넘는 오랜 한미동맹의 상징인 동시에 임시정부가 재미 동포들의 정성 어린 성금을 받아 외국에 세운 유일한 공군기지이기 때문이다. 쌀농사로 거부가 된 김종림 애국지사가 제공한 5만 달러(1000만 달러)의 자금을 기반으로 약 40에이커(49000)의 부지와 당시로는 최신의 스탠더드(Standard) J-1 훈련기 3대를 확보할 수 있었고, 19203월 초부터 24명의 생도를 대상으로 군사전략, 영어, 비행술 등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192075일에는 공식 개교행사를 열고 그 존재를 내외에 알렸다. 비록 대홍수로 인한 재정난으로 1년여 만에 문을 닫아야 하는 비운을 맞았지만,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연마한 청년들은 중국군과 미군에 입대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이국(異國)땅에서도 비행부대 창설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감으로써 광복 후 이른 기간에 대한민국 공군이 창군되는 여건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제 2년 후인 20207월이면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게 되지만, 정작 미국 현지의 비행학교 터는 오랜 세월 방치된 채 잡풀만 무성하고 폐가(廢家) 수준의 목제 건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80세의 재미 동포 류기원 교수가 10여 년간의 준비작업을 마치고 20169월 미국 현지에 윌로우스 항공기념재단(Willows Air Memorial)을 설립했고, 올해 7월에는 20에이커(2만여 평)의 사업 부지를 확보해 놓은 상태이며, 내년 전반기부터 재미 한인 동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연 뒤 기념관 건립을 위한 본격적인 모금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단 측에서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대한민국 공군 창군 70주년이 되는 2019년에 기념관 착공식을 통해 항공 독립운동과 한미동맹의 상징인 윌로우스 한인비행학교가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국군 장병은 물론 예비역 그리고 일반 국민의 깊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로는 최첨단 무기인 비행기를 이용해 독립전쟁을 수행하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노백린·곽임대·김종림 등 수많은 항공 선각자와 청년 전투비행사들의 충혼이 서려 있는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 본 내용은 국방일보 2018,12.14 보도사항으로 관심있는 회원 여러분의 일독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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