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전쟁 (1999.3.24 ~ 6.9)
1. 전쟁 경과 
< B-2 스텔스 폭격기> 1999년 3월 24일 시작된 코소보 전쟁은 밀로세비치의 코소보 내에서 자행하고 있었던 ‘알바니아계 인종청소’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NATO는 알바니아계 주민의 인도주의적 보호와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동맹군 작전을 실시하였다. 또한 미국은 나토의 주변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고 회원국의 결속을 통하여 나토의 역할을 확대하며 미국의 지도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었다. NATO의 코소보 전쟁은 연합작전으로 수행되었다. 19개 동맹국 가운데 14개국이 항공전력을 제공하여 총 38,000회 이상의 전투출격을 단행하였다. 미국은 가장 많은 항공전력을 투입하였는데 1999년 6월 유럽에 전개한 미군의 항공기 수는 731대에 달하였다. 다른 동맹국은 총 327대의 유인 및 무인 항공기를 제공하였고 총 출격의 약 39%인 15,000회를 출격하였다. 공습초기 NATO군은 세르비아의 요격기를 공중에서 격추시키고, 지상에서는 공군기지와 방공체계를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하여 신속히 공중우세를 확보하였다. 또한 적의 지휘통제체제를 약화시키고 코소보에 위치한 세르비아군의 군사적 표적과 증원전력을 공격하였다. 교량, 철도, 전력시스템과 같은 산업기반시설에 대한 공중공격으로 유고군의 지휘, 통제, 재보급, 재편성 능력을 감소시켰다. 이러한 총체적인 공격으로 인해 밀로세비치는 나토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결국 서방 7개국 및 러시아의 합의로 마련한 평화 안을 유고연방이 수용하고, 이를 UN 결의안으로 채택함에 따라 개전 78일만에 종결되었다. 2. 항공력에 의한 비대칭전 수행 비대칭전은 양측간 성격과 특성이 서로 다른 수단이나 방식에 의하여 수행하는 전쟁의 형태이다. 이것은 상대에 대해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특정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하거나, 다양한 요소를 배합하여 수행하게 된다.
코소보에서 전쟁을 계획하면서 미국과 동맹군 지도자들은 지상군을 투입하기 보다는 단계적인 항공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사태해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NATO 측은 지상군 없이 항공력만을 가지고 비대칭적인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공격작전의 핵심적인 역할은 지상기지의 공군 항공기가 수행하였고, 해군 항공모함의 항공기, 해병대 연안 및 해상기지의 공격기, 순항미사일로 무장한 함정 및 잠수함 또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밀로세비치는 동맹군의 항공력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은폐와 위장전술을 사용하고 악천후의 보호효과를 이용하면서, NATO측의 항공작전을 방해하기 위해 대량의 피난민을 이용하고 허위정보를 노출하거나 대외적으로 선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3. 정치·외교적 역할의 중요성 작전적 측면에서 동맹군 작전은 그 특성상 대단히 힘든 연합 공군작전으로서, 나토는 군사작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외교활동과 군사적 대비태세확립에 주력했다. 또한 19개 민주주의 국가들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모든 국가의 동의를 얻으려면 반드시 토의와 협상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나토는 동맹국과 주요 우방국들의 지원 없이는 군사작전을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지원은 교전 인근지역의 국가와 수년간 외교적 접촉을 유지해 온 노력의 결과였으며, 평화를 위한 동반자로서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며, 유대관계를 유지해온 결과로 인하여 인도주의적 위기와 작전수행의 큰 부담을 감당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맹국들은 주변국의 안정회복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구호작전을 위하여 지상전력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상군 및 공군기지, 영공 등 군사하부구조를 이용토록 함으로써 작전수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따라서 전쟁은 정치의 연속으로 외교적 역할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해주는 전쟁이었다. 4. 첨단 무기에 의한 작전효과 극대화

<흑연폭탄으로 석택적 파괴된 발전시설(좌), 정밀폭격으로 단절된 인도교(우)> NATO 동맹군 작전은 복잡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작전기간 내내 항공기와 항공무기체계의 운용을 크게 방해했던 것은 유고슬라비아의 악천후였다. 전쟁후에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구름층이 하늘을 50% 이상 덮었던 기간이 총 작전기간의 70%를 초과하여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날은 전쟁 78일 중 24일에 불과하였다. 또한 험악한 산악지형은 NATO의 표적 식별능력을 감소시켰으며, 임무수행에 있어 위험요소를 증가시켰고, 유고슬라비아의 강력한 대공방어망 역시 승무원들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군은 공격작전은 표적을 정확하게 공격하기 위하여 새로운 B-2 스텔스폭격기를 투입하고, 합동정밀직격폭탄(JADM: Joint Direct Attack Munitions), 지상공격미사일(SLAM: Standoff Land Attack Missile) 등 다량의 원거리 및 GPS 유도무기를 사용하였다. 새롭게 사용된 그러한 무기들은 성능과 정확도 측면에서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NATO는 78일간 38,000회(일일 평균 487회) 이상의 전투출격을 단행할 수 있었고, 항공전 역사상 가장 정확성이 높은 작전을 실시할 수 있었다. 표적 식별 및 확인 과정에서 중국 대사관을 공격하는 실수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수적 피해발생률이 가장 낮았던 항공작전이었다. 오직 10%의 정밀무기 사용률을 보였던 걸프전과 달리 90%라는 다량의 정밀무기를 사용한 결과였다. 5. 미래전의 방향 제시 코소보 전쟁에서 NATO군에게 지원되었던 C4체계(지휘, 통제 통신 및 전산 시스템)는 성능 및 각종 서비스 측면에서 걸프전을 능가하였다. 지휘관들은 전쟁 역사상 처음으로 화상회의를 통해 작전을 지휘하고 통제하였다. 따라서 걸프전 보다 훨씬 소규모의 전력으로 구성되었지만 그들이 사용한 주파수 사용량은 거의 두 배에 달하였다. 지휘관들은 새로운 C4I체계를 사용하여 전략적 문제를 협의하고 결정하였고 작전과 전술적인 문제들에 대한 지휘통제 업무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상황파악, 의사결정, 지휘통제에 요구되는 시간과 폭을 대폭 단축시키고, 정확성을 증진시켜 상위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부터 하위 전술적인 부대에 이르기까지 목표에 집중된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NATO군은 정보, 감시, 정찰(ISR)자산에 의해 합동작전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양의 정보를 활용하였다. 세계 각지에 위치한 정보처리기관간의 전산망과 초고속자료 통신시설 등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지원받았고, 다양한 종류의 유·무인 정보, 감시, 정찰체계를 사용하여 양질의 정보를 생산하여 사용하였다. 세르비아가 방공 및 야전전력을 분산시킴에 따라 그들을 추적하고 감시하여 표적화하기 위해 무인항공기(UAV: Unmanned Aerial Vehicle)를 투입하여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그를 통해 악기상시에도 세르비아의 이동, 은폐 표적들의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여 작전에 반영할 수 있었다. NATO 동맹군은 그들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던 유고군의 통합 방공체제에 대하여 우세한 대공제압수단들과 전술을 사용하여 대응하였다. 유고군은 걸프전과 비교시 3배에 달하는 다량의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방공망을 제압하기 위하여 전쟁 초기부터 적의 지휘본부 및 레이더, 미사일 발사대 등 방공체제 구성 요소들을 최우선 표적으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모든 임무를 전자전 및 대공제압용 항공기들의 지원하에 수행함으로써 손실률을 낮출 수 있었다. 그 결과 38,000여 출격을 수행하면서도 오직 2대만을 손실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