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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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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락 원자로 폭격
작성자 공군발전협회
작성일 2019-12-11 조회수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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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락 원자로 폭격 (1981.6.7)

 

 

1. 핵개발에 대한 우려

1981년 6월 7일 이스라엘의 이라크 오시락(OSIRAK) 원자로 폭격은 항공력을 이용한 가장 완벽한 기습작전으로 알려져 있다. 오시락(Osirq 또는 Osirak)은 이집트 죽음의 여신 오시리스(Osiris)의 이름과 원자로 수령국인 이라크의 이름을 조합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라크는 프랑스의 기술지원을 받아서 바그다드 동남방 12NM외곽에 1981년 완공을 목표로 연구용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었다. 또한 이라크는 폭탄제조가 가능한 고농축 우라늄의 도입을 시도하고 플루토늄을 원자로 하부 비밀 갱도에 다량 보관하고 있다고 의심받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원자로 건설 계획이 핵무기 제조능력과 연계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그리고 장차 핵무기의 심각한 위협을 예상하여 정보기관들은 통하여 지속적으로 방해하였으나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1980년 9월 30일 1차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공군기로 위장한 F-4전폭기 2대를 투입하여 로켓과 폭탄으로 공격하였으나 경미한 손상만 입히는데 그쳤다. 그리고 이라크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각심을 강화하고 원자로 주변의 대공방어망을 증강하였다. 그 후 이라크의 원자로가 1981년 7월 이전에 가동될 것으로 알려지자, 이스라엘은 원자로가 가동되기 이전에 또다시 군사적인 공격을 가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원자로가 가동된 이후에 폭격할 경우 인근의 바그다드에 대한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었기 때문이었다.

 

 

2. 공중공격에 의한 원자로 파괴



[피폭된 이라크 오시락 원자로와 이스라엘 공격편대군 공격 경로]

 

이스라엘은 원자로에 대한 공격을 "BABYLON 작전"으로 명명하고 전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24명의 조종사를 선발하였다. 그리고 네게브(Negev) 사막에 설치한 이라크 원자로와 똑같은 콘크리트 실물모형 대상으로 에치온(Etzion) 공군기지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실시하였다. 초기에는 지구력 배양훈련과 침투로 레이더 탐지능력을 점검하면서 밀집편대 저고도 침투훈련을 하였고 마지막 단계서는 실질적인 공격을 위한 저고도 저각도 폭탄 투하훈련을 하였다.

이러한 투하훈련은 폭탄이 원자로의 두꺼운 콘크리트 돔에 충돌하여 경미한 피해만 입힐 것에 대비하여 저각도로 외부 벽을 관통시켜 내부에서 폭발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공격편대군은 전면전으로 확전가능성을 피하고 정확히 목표물만을 파괴하기 위하여 8대의 F-16을 공격기로 편성하고 6대의 F-15를 엄호기로 하였다. 공격편대군은 시나이 반도의 남부로부터 북쪽으로 향하는 1,100NM의 긴 비행경로를 따라서 진입하였고 이라크 국경부터는 초저고도로 비행하였다.
오시락 원자로까지 거리는 570NM로 90분이 소요되었다. F-16의 성능상 500NM의 전투행동 반경으로 570NM 밖의 목표를 공격후 안전한 지역까지 귀환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원거리 비행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이라크 영공 침투시 저고도 고속침투 방법을 탈피하고 저속침투(340Knot) 방법을 사용하여 전투행동 반경을 연장하였으며(약 80NM) 귀환시에는 공중급유를 받았다. 저공비행임에도 불구하고 요르단 레이더에 탐지되어 아랍 관제사로부터 국적확인을 요청받았으나 이스라엘 조종사는 아랍어를 사용하여 훈련 중인 요르단기라고 응답하여 아랍측을 기만할 수 있었다. 오후 6시 30분 목표에 도착한 공격편대군은 원자로 시설물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F-15의 엄호아래 F-16이 단종진 대형으로 한 대씩 원자로를 공격하였다. 투하된 2000LBS 폭탄 16발은 모두 원자로 돔과 그 주변 건물에 명중하였다. 공격소요 시간이 2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신속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그다드 주변에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과 요격기들이 전혀 대응하지 못하였다.

공격결과 원자로 돔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원자로는 파괴되어 냉각 POOL 속에 빠져 버렸다. 또한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주변 건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 이라크의 핵 개발 계획은 한동안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오시락 원자로 안에 그대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3. 외과수술적 항공력 사용

이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은 민족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위협을 제거하고 예방전쟁의 차원에서 어떠한 목표물도 공격할 수 있다는 의지를 과시하였다. 이스라엘은 기습적 항공작전을 통하여 의사가 환자의 치명적인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듯이 선택한 목표물을 신속 정확하게 제거하였다. 정치적, 외교적인 논란이나 갈등이 복잡하게 전개되기 이전에 발병하기 이전의 정상적인 상황으로 신속하게 복귀시켜 놓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적 공격목표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 분석을 바탕으로 치밀한 공격계획 수립과 실전적인 훈련 그리고 아랍제국 방공망의 취약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최신예 항공기를 운용한 결과였다.

이스라엘은 정부내 소수의 특별반을 구성하여 18개월간 공격 계획을 수립하고 검토하였으며 수개월간 모의 공격훈련을 실시하였다. 전쟁의 원칙 중에서 기습의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가장 취약한 공격 시기와 공격 방법을 선택하였다. 아랍측 방공망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침투로를 선정하고 공격 시기는 휴무일 회교도의 일몰 기도시간을 택함으로써 인명 피해를 감소하고 육체적 및 심리적으로 경계가 소홀해지기 쉬운 취약시간을 이용했다. 또한 해가 지는 시간에 석양을 등지고 공격함으로써 이라크의 대공포가 역광으로 인하여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고 공격 후 야간에 안전한 귀환을 할 수 있었다.

공격편대군 침투시 민간여객기로 오인하도록 14대의 전투기가 밀집편대 대형을 유지하였으며 신속한 공격 후 방공 레이더가 포착하기 곤란한 저고도로 이탈하여 주변에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과 전투기의 대응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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